주님의 식탁
매일 먹는 한 끼에서 영원한 잔치까지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식탁에 앉습니다.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때로는 혼자 한 끼를 해결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도 자주 사람들을 식탁으로 부르신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도 사람들을 만나실 때 식탁을 자주 쓰셨습니다. 세리와 함께 식사하셨고, 죄인이라 불리던 사람들과 한자리에 앉으셨습니다. 수많은 사람을 먹이셨고,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식사를 나누셨습니다. 부활하신 뒤에는 갈릴리 바닷가에서 제자들을 위해 직접 아침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마지막에는 또 하나의 식탁,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등장합니다.
성경의 식탁은 하나의 이야기를 향해 흐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다시 자신의 식탁으로 초대하시는 이야기입니다.
주님의 식탁은 우리가 무엇을 먹는 자리이기 전에, 누구와 함께 먹고 있는지를 기억하는 자리입니다.
초대받은 자리
하나님은 사람을 식탁으로 부르십니다
성경에서 식사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닙니다. 함께 먹는다는 것은 그 사람을 받아들이고, 한자리에 머물며, 삶을 나누는 일이었습니다.
구약에도 그런 장면이 있습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어른들을 부르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습니다. 시편의 노래는 하나님을 식탁을 차려 주시는 분으로 고백합니다.
11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더라
출애굽기 24:11 (개역한글)
5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편 23:5 (개역한글)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셨다는 사실은 당시 사람들에게 충격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식탁은 자격을 증명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이 아니었습니다. 은혜가 필요한 사람이 초대받는 자리였습니다.
1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누가복음 15:1-2 (개역한글)
10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11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12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13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9:10-13 (개역한글)
주님의 식탁 앞에서 먼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찾아낸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자신의 자리로 불러 주셨습니다.
함께 앉은 사람들
식탁에 앉으신 예수님
복음서를 읽어 보면 예수님의 사역 곳곳에 식탁이 있습니다. 마태의 집에도, 삭개오의 집에도, 바리새인의 집에도, 오천 명이 둘러앉은 들판에도 식탁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식탁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 용서가 선포되었고, 회개가 시작되었고, 소외된 사람이 공동체 안으로 돌아왔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시고 삶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예수님은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말까지 들으셨습니다. 그래도 그 식탁을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5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9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누가복음 19:5-10 (개역한글)
19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마태복음 11:19 (개역한글)
주님의 식탁은 언제나 사람을 살리는 자리였습니다.
식탁 위에서 본 자리 배치도
유월절 식탁
유월절 식탁과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님이 제자들과 나누신 마지막 식사는 유월절 식사였습니다.
14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15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16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누가복음 22:14-16 (개역한글)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풀려난 일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어린양의 피가 문에 있는 집은 죽음이 넘어갔습니다. 이스라엘은 오랜 세월 이 식사를 반복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했습니다.
13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찌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출애굽기 12:13 (개역한글)
그런데 예수님은 마지막 유월절 식탁에서 떡과 잔을 들고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유월절의 어린양이 가리키던 구원이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26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26-28 (개역한글)
29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한복음 1:29 (개역한글)
십자가는 우연히 일어난 비극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내어 주심으로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건지시는 참된 유월절 어린양이 되셨습니다.
제사에서 십자가까지
구약의 제사
- 죄인이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감
- 흠 없는 제물이 대신 죽음
- 계속 반복해서 드림
- 죄의 심각함과 속죄의 길을 보여 줌
십자가
- 하나님이 직접 속죄의 길을 여심
- 예수님이 자신을 내어 주심
- 단번에 드려짐
- 하나님께로 돌아갈 길이 열림
구약의 제사는 죄의 심각함과 함께 하나님이 마련하신 속죄의 길을 보여 주었습니다. 죄인은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고, 흠 없는 제물이 대신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 제사는 계속 반복되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반복해서 드려야 하는 또 하나의 제물이 아니라, 단번에 자신을 드린 분으로 고백됩니다. 십자가를 바라본다는 것은 하나님께로 돌아갈 길이 열렸음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10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1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히브리서 10:10-12 (개역한글)
마지막 만찬
“나를 기념하라”
예수님은 마지막 식탁에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고, 사도 바울은 그 말씀을 교회에 전했습니다.
23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고린도전서 11:23-26 (개역한글)
우리는 쉽게 잊습니다. 은혜를 잊고, 용서를 잊고, 내가 어디서 건져졌는지를 잊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떡을 볼 때 그분의 몸을, 잔을 볼 때 그분의 피를 기억하며 다시 고백합니다. 나는 내 공로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성찬은 우리가 예수님을 붙드는 행위이기 전에, 예수님이 우리를 붙들고 계심을 기억하는 자리입니다.
성찬에는 세 방향의 시선이 있습니다
- 과거십자가를 기억합니다
- 현재지금 함께하시는 주님을 바라봅니다
- 미래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립니다
참여하는 마음에 대해서는 바울이 이렇게 권합니다. 이것은 흠 없는 사람만 참여하라는 뜻이 아니라, 자기를 정직하게 살피고 은혜 앞에 나아가라는 초대로 읽습니다.
27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28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찌니 29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고린도전서 11:27-29 (개역한글)
교단마다 이해가 달라요
떡과 잔의 의미를 교회마다 다르게 가르칩니다.
가톨릭교회는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실제로 변한다고 가르칩니다.
루터교회는 떡과 잔 안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실제로 함께하신다고 고백합니다.
개혁교회·장로교회 전통은 성령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영적 임재를 강조합니다.
많은 침례교회와 츠빙글리 계통의 교회는 주님을 기억하는 기념의 뜻을 강조합니다.
이 페이지는 어느 한쪽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이해를 존중하며 함께 읽도록 돕습니다. 실제 성찬은 섬기는 교회의 가르침과 질서를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생명의 떡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
예수님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셨습니다.
35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6:35 (개역한글)
광야의 이스라엘은 매일 만나를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 만나를 먹은 조상들도 결국 죽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다시 배고파지는 떡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는 참된 떡을 말씀하셨습니다.
48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49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6:48-51 (개역한글)
그래서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말씀은 단순한 음식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생명과 죽으심, 십자가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그분 안에 거하는 일을 가리킵니다. (이 말씀을 성찬과 어떻게 연결하는지는 교회마다 이해가 다릅니다.)
53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요한복음 6:53-56 (개역한글)
음식을 바라보는 것과 먹는 것이 다르듯, 복음을 아는 것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멀리서 자신을 바라보라고 하지 않으시고, 그분 안에 거하며 그분의 생명으로 살아가라고 부르십니다.
갈릴리의 아침
부활하신 주님이 준비하신 아침
십자가 뒤 제자들은 무너졌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고, 제자들은 두려움 속에 흩어졌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예수님이 떡을 떼실 때 비로소 그분을 알아보았습니다.
말씀 보기 · 누가복음 24:28-35
28저희의 가는 촌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하는것 같이 하시니 29저희가 강권하여 가로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저희와 함께 유하러 들어 가시니라 30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31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33곧 그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 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한 자들이 모여 있어 34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지라 35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누가복음 24:28-35 (개역한글)
그리고 베드로는 다시 갈릴리 호수로 돌아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런 제자들을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먼저 하신 일은 책망이 아니라 아침을 차리는 일이었습니다.
9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10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신대 11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고기가 일백 쉰 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12예수께서 가라사대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신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요한복음 21:9-12 (개역한글)
실패한 제자들에게 주님은 먼저 밥을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15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또 두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요한복음 21:15-17 (개역한글)
숯불 두 장면
부인하던 밤
대제사장의 뜰, 추운 밤
18그 때가 추운고로 종과 하속들이 숯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요한복음 18:18 (개역한글)
다시 부르신 아침
갈릴리 바닷가, 조반
9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요한복음 21:9 (개역한글)
같은 숯불 곁에서 베드로는 부인했고, 같은 숯불 곁에서 다시 부름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식탁은 과거의 실패를 들추어 사람을 주저앉히는 자리가 아닙니다. 은혜로 다시 일으켜 세상으로 보내시는 자리입니다.
절기
절기: 기억하는 식탁의 달력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여러 절기를 주셨습니다. 절기는 단순한 종교 행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을 잊지 않도록 삶의 달력에 새겨 둔 기억의 장치였습니다.
4기한에 미쳐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로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하니라 5정월 십사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6이 달 십오일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칠일 동안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7그 첫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찌며 8너희는 칠일 동안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제 칠일에도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찌니라
레위기 23:4-8 (개역한글)
- 유월절: 애굽에서의 구원을 기억합니다.
- 무교절: 옛 누룩을 버리고 새 삶을 기억합니다.
- 초실절: 첫 열매를 주신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레위기 23:9-14)
- 칠칠절(오순절): 추수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레위기 23:15-21)
- 초막절: 광야에서도 자기 백성을 먹이고 지키신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레위기 23:43)
절기에는 음식이 있었고, 감사가 있었고, 가족과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먹고 마시며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기억했습니다.
교회가 지키는 절기도 같은 방향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탄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자리로 오신 일을, 고난주간·성금요일은 하나님의 어린양이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십자가를, 부활절은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기억합니다. 유대 절기와 교회의 절기를 서로 이어 읽는 설명이 많지만, 어떻게 연결하느냐는 전통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절기를 지키는 목적은 날짜를 거룩하게 만드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달력에 복음을 새기는 일입니다.
다음 절기까지
- 교회력 날짜는 화면에서 계산해 보여 줘요.
서방 교회력 기준이에요. 유대 절기는 히브리 달력을 따라 해마다 날짜가 달라요.
| 절기 | 기억하는 것 |
|---|---|
| 유월절 | 애굽에서의 구원 |
| 무교절 | 옛 누룩을 버리고 새 삶 |
| 초실절 | 첫 열매를 주신 하나님 |
| 칠칠절(오순절) | 추수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
| 초막절 | 광야에서 먹이고 지키신 하나님 |
| 절기 | 기억하는 것 |
|---|---|
| 대림절 | 오실 주님을 기다림 |
| 성탄절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심 |
| 사순절·고난주간 |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걸음 |
| 부활절 |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심 |
| 성령강림절 | 성령이 임하심 |
혼인잔치
하나님 나라의 잔치, 어린양의 혼인잔치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시며 잔치의 비유를 자주 쓰셨습니다. 왕이 아들을 위해 베푼 혼인잔치, 집을 떠났다가 돌아온 아들을 위해 차린 잔치 가 그렇습니다.
2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마태복음 22:2 (개역한글)
23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누가복음 15:23-24 (개역한글)
하나님 나라는 굶주린 사람을 멀리 세워 두는 곳이 아닙니다. 잃었던 자녀를 집으로 불러 함께 기뻐하시는 나라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이 만민을 위한 잔치를 베푸시고 눈물을 씻기실 날을 노래했습니다.
6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7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그 가리워진 면박과 열방의 그 덮인 휘장을 제하시며 8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사야 25:6-8 (개역한글)
요한계시록은 역사의 마지막을 어린양의 혼인잔치로 그립니다.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이 영원히 함께하는 날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로 묘사됩니다. 신부는 먼저 사랑받고 씻김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신랑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신부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자신을 꾸미는 데 있지 않고, 사랑하는 분을 기다리는 데 있습니다.
6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 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7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8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9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요한계시록 19:6-9 (개역한글)
25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에베소서 5:25-27 (개역한글)
말씀 보기 · 마태복음 25:1-13
1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3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5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쌔 6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7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쌔 8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9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25:1-13 (개역한글)
주님은 지금도 문밖에서 부르십니다.
20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20 (개역한글)
그래서 성찬은 과거의 십자가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미래의 잔치도 바라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는 주님을 직접 뵙고 영원히 함께하게 됩니다. 이 잔치는 점수표가 아니라 초대장입니다.
당신의 자리
식탁 끝에 빈자리가 하나 있습니다.
초대장
20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20 (개역한글)
9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요한계시록 19:9 (개역한글)
이 자리는 점수로 얻는 자리가 아니라 은혜로 청함을 받는 자리입니다.
오늘의 식탁
오늘의 식탁
우리는 매일 밥을 먹습니다. 그 평범한 식탁도 믿음의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밥 한 끼를 앞에 두고 먹을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혼자 먹는 사람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우리의 식탁으로 초대할 수 있습니다. 가족과 함께 먹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습니다.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과 다시 관계를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식탁을 기억하는 사람은 자기만 배부른 삶을 선택하기 어렵습니다. 주님의 식탁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누구를 내 곁에 앉힐 것인가?
누구와 떡을 나눌 것인가?
누구를 다시 공동체 안으로 불러들일 것인가?
주님의 식탁에서 기억할 일곱 가지
- 나는 초대받은 사람입니다내 자격 때문이 아니라 은혜로 주님의 식탁에 앉았습니다.
-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십자가에서 나를 대신하여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 나는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성찬은 잊기 쉬운 복음을 다시 마음에 새기는 자리입니다.
- 예수님은 나의 생명의 떡이십니다내 영혼을 살리는 것은 세상의 성공이나 만족이 아니라 그리스도입니다.
- 실패해도 주님은 다시 부르십니다갈릴리의 아침처럼 주님은 실패한 제자를 먹이고 다시 보내십니다.
- 나는 혼자 먹는 신앙인이 아닙니다주님의 식탁은 이웃과 공동체를 향해 열려 있습니다.
- 우리는 마지막 잔치를 기다립니다성찬은 다시 오실 신랑과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바라보게 합니다.
오늘의 식탁 묵상
오늘 밥을 먹기 전 잠깐 생각해 보세요. 이 한 끼가 내 앞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길이 필요했는지, 모든 생명과 양식을 허락하신 분이 누구신지. 식탁 앞에서 십자가를 기억하고, 오늘 함께 먹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식탁에 함께하지 못하는 사람을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마음속으로 고백해 보세요.
“주님, 오늘도 생명을 주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오늘의 한 걸음
오늘 한 끼만큼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함께 식사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보세요. 혼자 식사하는 사람이 생각난다면 짧은 안부를 보내 보세요. 가능하다면 이번 주 한 사람을 여러분의 식탁으로 초대해 보세요. 주님의 식탁을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가 받은 환대를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한 문장으로 기억하기
주님의 식탁은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하고, 오늘의 이웃을 사랑하며, 다시 오실 주님과의 영원한 잔치를 기다리는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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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누는 온라인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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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성찬과의 구분
이 온라인 콘텐츠는 실제 성찬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성찬은 교회와 공동체의 예식과 질서 안에서 진행되는 예배의 자리입니다.